어느 전시회에서
어느 전시회에서
  • 안기영 시니어기자
  • 승인 2020.02.11 09: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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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그러나 사유할 수 없는

아는 이로 부터 우연히 전해 들은 전시회가 있었다. 청년예술가 5인이 지역사회의 계획에 따라 곧 철거될 집을 '창작의 공간'으로 되살려 낸 시도가 흥미로웠다.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에서 그들은 실험적 창작 전시전을 열었다. 

전시장으로 사용된 철거 예정의 주택

 전시장은 산새마을의 마을버스 종점에서 내려 조금 더 올라가는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집. 방 네칸에, 채소밭, 뒤뜰에 장독대까지 있고, 고개를 들면 하늘이 손에 닿을 듯하다. 이 곳을 찾아 낸 작가들의 시도가 범상치 않다.

수십년을 지탱해 온, 지금은 비어있는 주거 공간은 다시 사유(思惟)할 기회를 얻고, 공간은 더 이상 사유(私有)할 수 없는 시한부 생명의 공간이 되어 5인 창작의 산실이 되었다.  '思惟하는, 그러나 私有할 수 없는' 주제로.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서면 비스듬히 앉은 집앞에 작은 텃밭이 있고, 처마에 덧대어 낸 보에 집주인의 농기구가 가지런히 정갈하게 걸려 있어 봄이 되면 다시 제 할일을 기다리는 듯하다.

생존의 공간, 네개의 방은 방문객이라면 알고 싶어할 각 방에 대한 궁금증을 작가 유현영이 춤사위로 풀어 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벽면이 '퍼포먼스 #3'의 기록이다. 집 안팎에서 변하는 작가의 정체성과 곧 사라질 집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갇힌 마음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주제 "여기도 아닌데".

여기도 아닌데-유현영작가

생존과 창작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청년작가에게 시한부 공간은 또 다른 대안의 의미를 부여하여 깊은 사유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 두가지의 욕구사이에서, 안과 밖의 기로에서 경계를 침범하며 사유는 더욱 치밀해지고, 나를 제한하던 조건들에 반항하면서 작가는 터-억 내려 놓을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터-억,김지현작가
터-억,김지현작가

 무심코 지나친 쓰레기들, 소명을 다한 것에 대한 가치를 재조명하자고 한 것이 최희연작가의 의도다. 작은 방, 냄새 나는 음식물 쓰레기의 그림에서 선입견도 바뀌어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면 작가의 의도에 조금 가까이 간 것이리라.

냄새 나-최희연작가

 사람이 없는 죽은 공간에 물 한 방울로 끈질기게 뻗어 나가는 선인장과 식물들을 재배치하여 서로를 연결시켰다. 예술가란 유기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곧 철거될 지라도 그 자리는 새로운 삶이 피어나는 공간으로 이루어질 것을 이주우 작가는 믿고 있다.  

살아남아 보자!-이주우

 현관을 들어서면 오른 쪽 첫번째 방은 현관문을 방문으로, 방문은 대문용 문짝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이 신기한 배치에 대한 의문을 김리아 작가는 사라진 홍순자(72)씨의 살 냄새 나는 공간으로 재구성하였다. "아이고 야~야 내 이야기 들어보레이" 하듯이.

아이고, 야야-김리아작가

이 방에는 뒷문을 두어, 그리로 나가면 따로 둔 뒷간과 장독대가 있고, 고추나 화초를 키우는 짜투리 공간도 있다. 나즈막한 담벼락 그 아래는 옹벽, 작은 골목길로 고물장수의 리어카가 지나는 길이 있다.

이 특별한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켜켜이 쌓여진 역사의 흔적 속으로 화이트큐브를 마다하고 찾아 온 청년작가 5인의 생존과 창작의 치열한 사유가 또 다른 사유(私有)할 수 있는 공간에서 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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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복 2020-02-12 17:24:06
잘~보고갑니다.
참으로 대단한 기사입니다.
안기영기자님 대단하십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