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처세술보다 인간의 도리를 쫓은 진짜 사나이, ‘예양' 편
얄팍한 처세술보다 인간의 도리를 쫓은 진짜 사나이, ‘예양' 편
  • 임나경 소설가/수필가
  • 승인 2019.12.2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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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 속 인물들의 매력을 찾아서(6)
'예양'의 초상화 (그림출처 구글백과)
'예양'의 초상화 (그림출처 구글백과)

‘레이먼드 조’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인정해 주는 곳으로 가려는 습성이 있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최대의 기쁨을 얻는다. 그 욕구는 돈 보다도 훨씬 강하다”라고 하였다. 레이먼드 조의 이 말이 진리임을 인류사 속에서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강태공’(2019년 9월 25일자 시니어신문 칼럼에 연재된 ‘태공망 여상’편에서 소개)을 비롯한 역사 속 많은 책사들은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주군을 만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기다렸으며, 그들을 인정한 운명의 상대를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해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반면에 최고의 인재를 곁에 두고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해 결국 파멸의 여정으로 들어선 어리석은 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한 운명의 파트너를 만나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긴 역사 속 수많은 인물들 중 오늘은 중국 춘추시대 말, 생존을 위한 알량한 처세술로 부귀영화를 얻기보다 자신을 제대로 인정한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예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오랜 망명 생활로 고생한 ‘진문공 중이(2019년 10월 29일자 시니어신문 칼럼에 연재된 ‘진문공 희중이’ 편에서 소개)’가 다시 세운 진(晉)나라는 춘추시대 말기에 ‘육경(六卿)’이라고 일컫는 여섯 가문인 ‘지(智)’, ‘범(范)’, ‘중행(中行)’, ‘한(韓)’, ‘위(魏)’, ‘조(趙)’씨만이 남아 쟁탈전을 벌인다. 그 과정 중 범씨와 중행씨가 몰락하고 남은 네 가문이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계속 한다.

이 중 세력이 강한 지씨 가문의 수장인 ‘지백’이라는 인물이 다른 세 가문에게 자신에게 토지를 할양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지백은 이름이 ‘지요’로 야망이 컸으나 천성이 매우 포악한 인물이었다. 한씨와 위씨 가문은 시킨 대로 하였지만 지백과 원수였던 조씨 가문의 ‘조양자’는 지백의 명을 거절한다. 조양자는 이름이 ‘무휼’로서 지백과 같이 진나라 대부였는데, 지백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과거 조양자에게 지백이 억지로 술을 권했으나 거절하자 지백은 그의 뺨을 때렸고, 그것도 모자라 조양자의 아버지 ‘간자’에게 다른 이를 후계자로 세우라고 모욕을 안겨주었다. 이 일을 잊을 수 없던 조양자는 지백을 배신하도록 위씨와 한씨를 설득 후, 힘을 합쳐 지백을 물리치고 죽여 버린다.

중국 하북성 싱타이현 예양공원의 예양의 동상 (사진출처 구글포토)
중국 하북성 싱타이현 예양공원의 예양의 동상 (사진출처 구글포토)

조양자는 지백에 대한 원한이 아직도 씻기지 않았던지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여 요강(혹은 술잔이라고도 전한다)으로 썼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폭군이라고 일컫을 정도로 포악무도한 지백의 충복인 ‘예양’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죽은 주군의 복수를 결심한다.

예양은 ‘진양’의 손자로 알려져 있는데, 과거 범씨와 중행씨 가문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하고 국사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지백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깊은 충절과 의리를 지니고 있었다. 철저한 복수를 위해 예양은 스스로 죄수가 되어 궁의 변소 벽을 칠하는 일을 하며 조양자의 숨통을 끊을 순간만 노린다.

어느 날, 측간에 볼일을 보러 간 조양자는 기분 나쁜 살기를 느끼고 변소를 철저히 뒤지게 한다. 곧 비수를 숨기고 있던 수상한 죄수인 예양을 찾게 되었는데, 죽은 주군의 복수를 하려는 갸륵한 충심에 감복한 조양자는 의인을 죽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며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객 예양을 풀어준다.

여기서 멈출 법도 한데, 예양은 끈질긴 집념의 소유자였던 듯하다. 더 완벽한 복수를 위해 그는 온 몸에 옻칠을 해 나병 환자처럼 외모를 바꾸고 목소리까지 바꾸려 뜨거운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런 예양을 겨우 알아본 부인은 절규했고, 그의 지기는 조양자에게 충성하며 편히 여생을 살라고 권한다. 하나 예양은 후세에 길이 남길 명언을 남기며 친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필자는 이 말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내가 목숨 걸고 이 일을 하려는 것은 후세에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며 되돌아 올 수 없는 여정을 향한다.

지기의 말대로 가진 능력을 밑천삼아 영달을 위해 이미 가고 만 주군에 대한 의리는 잊어버리고 얼마든지 편히 살 수 있었을 터인데, 끝까지 혈육이 아닌 지백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진 예양의 태도에서 포악하고 잔인했으나 자기 사람들은 각별히 챙기고 아꼈던 지백의 리더로서의 포용력이 대단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예양이 조양자에게 붙잡힌 중국 하북성 싱타이현의 예양교 (사진출처  每日頭條)
예양이 조양자에게 붙잡힌 중국 하북성 싱타이현의 예양교 (사진출처 每日頭條)

조양자가 자주 지나가는 다리 밑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감추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예양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잡는다. 어느 날 외출을 하던 조양자의 말이 다리 앞에서 주춤거리고 이를 수상히 여긴 조양자는 다리 주변을 뒤지게 한다. 오래지 않아 온 몸에 고름이 흐르고 벙어리가 된 예양이 비수를 들고 다시 앞에 나타나자 조양자는 한번 살려주었던 이가 다시 자신을 죽이려하자 화가 나 “범씨와 중행씨도 모신 네가 그들을 모두 죽인 지백을 위해 복수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예양은 “범씨와 중행씨는 나를 여러 신하 중의 한명으로 평범하게 대했기에 나도 그들을 평범하게 대했으나, 지백은 자신을 국사로 귀히 대했기에 자신도 국사로서 그를 대할 뿐”이라고 답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예양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며 그의 충을 찬사하였으나, 이 대목에서 그의 충은 유교에서 말하는 무조건적인 충심이 아닌 조건적인 충절임을 엿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예양은 지백에 대해 충심으로서 복수를 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고 알아준 이에 대한 인간의 의리로서 보답한 것이 아닐까 싶다.

죽기 전 예양은 저승에서 지백을 만날 낯이 없으니 조양자에게 윗옷이라도 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변치 않은 충절에 감동한 조양자는 겉옷을 내주었고, 예양은 그 옷을 세 번 칼로 베고 미련 없이 그 칼 위로 엎어져 자결한다. 이 모습을 본 조나라의 가신들은 진실로 슬퍼했다고 전한다.

중국 하북성 싱타이현 예양교의 푯말 (사진 출처 구글포토).
중국 하북성 싱타이현 예양교의 푯말 (사진 출처 구글포토).

처세술에 대한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현대에서 예양의 의리를 중히 여기는 모습은 고지식하고 어리석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우둔한 행보가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작금의 현실은 또 다른 예양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각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입신과 출세를 위해 얼마든지 얼굴색을 바꾸고,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이들까지 배반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에 인간과의 도리를 중히 여기고 스스로가 깨닫고 있는 것보다 더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한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예양의 오래 전 행보를 보며 알 수 없는 부러움과 씁쓸함이 교차한다[임 나 경 (林 娜 慶)]
 

[임나경]
소설가, 각본가.

<출간작>
곡마’, 황금소나무, 2016
'대동여지도 : 고산자의 꿈’, 황금소나무, 2016
'사임당 신인선 : 내실이 숨긴 이야기’, 황금소나무, 2017
': 숨겨진 진실’, 황금소나무, 2017 (예스24 국내 젊은 작가들의 주목할 만한 소설 선정)
'진령군 : 망국의 요화’, 도서출판 밥북, 2017 (24회부산국제영화제 2019아시아필름마켓북투필름 선정작)

<시나리오>
방문객(The Visitor), 2017. 8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초청작
미라클(The Miracl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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