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기 비움과 겸양지덕으로 불멸의 신화가 된 명의, ‘편작' 편
완전한 자기 비움과 겸양지덕으로 불멸의 신화가 된 명의, ‘편작' 편
  • 임나경 소설가/수필가
  • 승인 2019.11.27 2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십팔사략 속 인물들의 매력을 찾아서(5)
편작 초상화 (그림출처 다음포토)
편작 초상화 (그림출처 다음포토)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의료인이라면 고된 수련 과정을 마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되뇌였던 의료인의 윤리강령을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한 부분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히포크라테스’는 서양에서 의학의 아버지라고 존경받고 있는데, ‘플라톤’에 의하면 전문적으로 의학도를 훈련시킨 인물이라고 한다.

서양에 히포크라테스가 있다면 중국에는 ‘편작’과 ‘화타’가 있다고 한다(우리나라에도 ‘구암 허준’ 등 많은 명의들이 계시지만 칼럼의 특성 상 십팔사략 속 인물을 다루는 관계로 중국의 명의를 소개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편작과 화타는 중국에서 의성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다. 전국시대의 편작은 최초 한방 분야의 부인과와 소아과 의사로, 후한 말기의 화타는 뛰어난 외과의사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은 이 두 인물 중 ‘편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편작은 격동의 전국시대를 살다간 인물로 성은 ‘진’, 이름은 ‘완’, 자는 ‘월인’, 호는 ‘노의’이다. 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제나라로 지금의 중국 허베이 창주, 또 하나는 노나라로 지금의 제남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제나라 중국 허베이 창주 출신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영화 '신의 편작' 중의 한 장면 (사진출처 다음포토)
영화 '신의 편작' 중의 한 장면 (사진출처 다음포토)

이 편작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재미난 이야기가 존재한다. 편작은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 동쪽 지역의 뛰어난 의원이나 환자를 치료하던 의원들을 통틀어 편작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편작(扁鵲)이라는 이름의 뜻이 ‘까치가 난다’는 것처럼 병을 치료하는 의원은 환자들에게 반가운 존재이기에 그리 불렀다고 추측하는 의견들도 있다. 당시 의원들은 지금처럼 한 장소에 머물며 의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떠돌며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편작’이라는 인물 또한 대륙을 떠돌며 조나라에서 편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혹은 아주 오래 전 ‘편작’이란 명의가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제나라 진월인의 신출귀몰한 의술로 인해 예전의 편작이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로 진월인을 편작이라고 불렀다는 의견도 있다.

어찌되었든 오늘 소개하는 ‘편작’은 제나라 출신의 의원으로 사서에 기록된 인물이다. 편작은 히포크라테스처럼 의료업에 종사한 가문에서 태어난 이가 아니다. 원래 객사에서 관리인으로 일했는데, 그 객사에 오래 투숙한 ‘장상군’이라는 이의 눈에 들어 놀라운 비방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장상군은 편작의 인간됨을 기특하게 보았던지, 편작을 불러 이슬에 섞어 마시면 30일 뒤에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투시력을 갖게 된다는 약과 함께 그가 가진 비방이 적힌 책을 건네주고 사라졌다. 장상군의 말대로 약을 복용하고 편작은 담 너머에 있는 것도 볼 수 있을 정도의 투시 능력을 갖게 되었으며 뛰어난 진맥 실력과 함께 의원으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런 이야기는 아마 편작이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도 병을 알아내는 능력에 감탄한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편작은 남다른 뛰어난 관찰력이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고 이는 의원으로서 그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상해본 의서 '편작심서' 1책완질 (사진출처 구글포토)
중국상해본 의서 '편작심서' 1책완질 (사진출처 구글포토)

제자들을 데리고 제나라와 조나라 등을 돌아다니며 편작은 놀라운 의술을 펼친다. 괵나라에서 죽은 태자를 다시 살려낸 이야기가 유명한데, 죽은 태자를 가만히 지켜보던 그는 태자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니 살릴 수 있다고 말하며 침과 약으로 다시 살려내었다고 한다. 이 일로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의’로 화려한 프로필을 얻게 된다. 괵나라 태자 뿐 아니라 제나라 환후의 병을 예견하고 경고한 일화도 유명하다. 환후를 보고 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니 조기 치료를 권했으나 왕은 그를 조롱하며 자신의 건강을 과시했다. 며칠 후 환후를 만난 편작은 병이 혈맥을 범했으니 치료하라고 경고했으나 역시 왕은 무시했다. 시간이 흘러 왕을 다시 만난 편작은 병이 장기를 침범했으니 빠른 치료를 권했으나 환후는 도리어 화를 내고 만다. 또 다시 며칠 뒤, 편작은 왕을 문안했으나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물러나온다. 이를 이상하게 본 환후가 편작에게 치료를 청했지만, 그는 이미 골수까지 침범하여 손을 쓸 수 없다고 하며 치료를 거부한다. 편작의 말대로 결국 국왕은 병으로 쓰러졌고 그를 급히 찾았으나 편작이 제나라를 떠난 뒤였다. 병이 깊어진 환후는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 죽고 말았다고 한다.

하늘이 내린 명의로 추앙받았으나 편작 진월인은 늘 겸손했다. 그 겸양의 미덕은 왕과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편작 위로 형이 둘 있었는데 이들도 의원이었다. 왕이 삼형제 중 누가 가장 의술이 뛰어난지 물어보자 그는 자신의 의술이 가장 미천하며 형들의 의술을 격찬했다고 한다. 온 세상이 인정하는 실력을 두고 자만하지 않고, 오롯이 낮은 자세에서 환자들을 대하는 그 모습을 보며 돈만 쫓는 현대의 일부 의료인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사랑을 받으면 시기와 질투 또한 따라오는 법이다. 완벽한 그의 의술을 천하 만민이 추앙했으나, 주술에 의한 치료를 반대한 편작을 당대 무술인들과 실력 없는 의원들이 싫어했다고 한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자신의 지위를 위협받을까 저어한 진나라의 ‘이혜’라는 시종의가 자객을 보내어 편작을 살해하고야 말았다.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은 던져 많은 생명을 구한 위대한 인물의 어이없는 죽음이다. 초라한 죽음이었지만 그가 세상에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길 시작한다. 그의 의술은 훗날 중국 의학의 본격적인 출발이 되었고, 후세 사람들에 의해 <난경>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진다.

중국 서안에 있는 편작묘 (사진출처 일모도원님의 블로그)
중국 서안에 있는 편작묘 (사진출처 일모도원님의 블로그)

편작은 신출귀몰한 놀라운 의술로 많은 생명을 구했으므로 현재까지도 신이 내린 명의로 존경받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그 뛰어난 의술이 편작을 우러러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료행위에 담긴 인간을 귀히 여기고 아끼는 고귀한 정신이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 크나큰 감동을 안겨준다고 본다. 인간을 위한 의술이 시작한 그 태초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이기적인 의료인들로 인해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의료사고가 빈번한 요즘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뿐만 아니라 물질만능주의에 눈이 멀어가는 우리 모두 한번 쯤 인간을 사랑하고 아꼈던 편작의 위대한 정신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임 나 경 (林 娜 慶)]
소설가, 각본가.

<출간작>
'곡마’, 황금소나무, 2016
'대동여지도 : 고산자의 꿈’, 황금소나무, 2016
'사임당 신인선 : 내실이 숨긴 이야기’, 황금소나무, 2017
': 숨겨진 진실’, 황금소나무, 2017 (예스24 국내 젊은 작가들의 주목할 만한 소설 선정)
'진령군 : 망국의 요화’, 도서출판 밥북, 2017 (24회부산국제영화제 2019아시아필름마켓북투필름 선정작)

<시나리오>
방문객(The Visitor), 2017. 8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초청작
미라클(The Miracle), 201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