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회복 칼럼] 공자 왈, “최초의 이치는 까마득한 밤에 하얀 낮이 생긴 것이다”
[인성회복 칼럼] 공자 왈, “최초의 이치는 까마득한 밤에 하얀 낮이 생긴 것이다”
  • 이상만 시니어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9.10.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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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서 빛나는 태양 품기

우리 사람은 밤이 깊어 어두우면 잠을 자고 하얗게 밝은 아침이면 뒤척이다 일어난다. 잘 살면 70 이상을 살고, 잘못 살면 때와 장소와 나이를 불문하고 영면(永眠)한다. 같은 사람이기에 명복(冥福)을 빌어준다.

약 2,560여 년 전에 편찬한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공자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서술하였다. 일반적으로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이 길이요 진리다’라고 해석한다. 이 말은 인류의 시조 복희씨(伏犧氏)와 성군인 문왕(文王)이 지은 역경(易經)을 공자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10익(十翼)을 보충하여 불후(不朽)의 고전 주역(周易)으로 거듭나면서 기록한 위대한 경구다.

이미 50에 천명을 알았다는 지천명(知天命)을 말한 공자는 천리(天理)와 천도(天道)를 깨닫고 천문(天文)을 꿰뚫어 마침내 “나의 도는 진리의 근원인 하나로서 음양(陰陽)의 상대적 이치를 하나로 꿰뚫었다”는 뜻으로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 했노라”고 하였다. 이 말뜻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세계와 눈에 보이는 상대적 세계를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하나라는 오묘(奧妙)한 이치로 깨달았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태극(太極)이고,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라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낳았으며 2분법적 사고로 단련된 서양인이 동양을 신비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동양에서 한문자 一(일)은 하나이면서 전체를 뜻하는 진리의 근원을 의미한다. 一(일)은 상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천부경(天符經)의 핵심 골자이다. 81자 중 11번이 기록될 만큼 하나[一]는 진리의 근원으로서 눈으로 보지 못하는 본질의 이치를 중요시하였고 강조하였다.

9천 년 전 동이족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천부경(天符經)에서는 천지인(天地人)을 하나[一]로 동등하게 나타내어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으로 표기하였고, 동시에 눈에 보이는 천지인 현상세계를 순차적으로 구분했다. 처음으로 깜깜한 하늘[陰]이 있은 뒤에 다음으로 밝은 태양[陽]이 나타나 지구가 생겨 움직이고 있고, 이어서 지구 만물을 대표하여 사람의 영적(靈的) 깨달음인 ‘다함이 없는 근본’인 무진본(無盡本)의 진리[道]가 성립했음을 명료하게 밝힌 것이다.

곧 조물주 하느님[上帝]이 이 모든 것을 창제하여 천지인(天地人) 3재(才)를 낳았다고 인식하고, 크게 정신(精神)과 물질(物質)로 구분하여 동양의 정신문화(精神文化)와 서양의 물질문명(物質文明)을 특색 있게 나름대로 창조 진화해 온 것이다.

이 과정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동양은 동양대로 서양은 서양대로 도전과 응전이라는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에 치우쳐 갈등과 대립이 지속될 것이나 최근에는 세계 지성인들이 앞장서서 동양과 서양이 융합(融合)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논리(辨證論理)가 다시 춤추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서양철학의 시각(視覺)에서 나온 해법이다. 헤겔과 아인슈타인의 사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아직 동양사상의 근본 핵심을 이해(理解)하지 못하였기에 또다시 서양사상에 의존하는 역사 반복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동양인은 분발해야 한다. 일본처럼 노벨상을 향한 노력도 중요하고, 중국처럼 경제발전에 힘을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근저에는 서구적인 상대적 패권주의(覇權主義) 사고에 물들어 눈을 멀게 하고 있지 않은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대한(大韓)을 의식한 민국(民國)인 한국은 지금 지정학적인 면에서 다시 혼돈에 처해 있다. 크게 보아 분단의 고착화이냐, 통일의 마지막 보루(堡壘)이냐를 눈앞에 놓고 있다. 고착화로 갈 경우 다시 엄청난 화마가 이 땅을 휩쓸게 될 것이고, 통일로 가면 막힘없는 육로와 수로가 열려 세계가 하나 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마침 우리 남쪽 땅에 수놓고 있는 태극기의 형상이 이를 암시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불타서 사라지는 태극기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태극기 물결을 이루어 하나가 될 것인가? 구한말에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못살고 힘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남은 경제, 북은 핵이 있다. 그래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나 국민은 주인의식을 갖고 운명론(運命論)을 넘어 천명(天命)을 이해하여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바른 정치적 판단은 지천명(知天命)의 입장에 서서 선택해야 무리가 없다. 동양에서 가장 오랜 대한(大韓)은 본디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본산이다. 그래서 근대에 동학(東學)의 ‘하느님을 모시자’는 시천주(侍天主) 정신이 살아 있었고, 서양에서 온 기독교가 사랑의 정신으로 이 땅에서 God[神] 대신 하느님, 하나님으로 부흥(復興)하고 있다.

역사상으로 더 올라가면 천명(天命)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라 하였다. 무력(武力)이 아닌 이치(理致)로 세상을 변화시켜가라는 천명을 받은 선조(先祖)의 당부를 공감하고 손잡고 실천해 가면 만사(萬事)가 오케이[O! Kore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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