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시절 인연이어라
다 시절 인연이어라
  • 지개야스님
  • 승인 2019.09.11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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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없는 빈 하늘에 창문을 두드리는 달님과 선문답을 한다. 목적 없이 떠도는 중놈이 여수란 낯선 곳에 멈춰선 고독한 발걸음! 창밖 어둠 속 건너 경도섬에 외로운 가로등불이 바닷속 물고기에 어두운 밤길을 밝혀 주는구나. 갓밝이 새벽에 쫓긴 어둠이 떠날 차비가 분주하다. 어둠아 넌 어제는 어디서 왔다가 오늘은 어디로 가는가? 오늘 밤에 또 올래?

어설픈 하루에 넋두리는 그렇게 어제로 갔다. 또 새로운 하루라고 받은 선물 1,440분! 고맙고 고맙다만, 난 너와 어떻게 보내야 할 아무런 계획이 없다. 일어나 30분은 명상을 마신다. 이어서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린다. 오늘도 어제처럼 유산균 우유에 감식초를 넣고 미숫가루 2숟가락을 넣어 아침을 처먹는다. 네가 준 하루에 선물 1,440분도 받지 못할 그날은 언젠가 나를 찾아오겠지.

돌아본 지난날에 발자취마다 겹겹이 쌓인 고뇌에 틈새로 들리는 웃음소리도 있구나!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추억에 웃음소리를 찾았더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텅 빈 자리에 알알이 눈물이어라. 그날에 아름다운 추억이 오늘에 눈물 후회가 될 줄이야 난 몰랐다. 가을 낙엽은 겨울을 알아도 봄에 핀 꽃은 겨울을 모른단다. 너나 나나 다 시절 인연이어라.

이래저래 외로운 자판기와 넋두리하다가 11시쯤 되면 벌거벗은 평등이 노래하는 사우나를 간다. 살아온 모든 아픈 상처에 눈물과 아련히 그립고 달콤했던 사랑에 추억 모두를 깨끗이 씻어버린다. 그림자 하나 걸치지 않고 들어낸 치부에 저마다 편안한 얼굴! 역시 과식 없는 발가벗은 진실만이 행복이 아닐까?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는 발가벗은 평등에 낙원!

물속에 검은 용 몇 마리도 두렵지 않은 평화! 내 생활비 중 한번에 5천원을 주고 발가벗고 멋대로 춤추고 노래하는 퇴폐업소 입장료가 제일 많이 차지한다. 그다음은 자동차를 먹여 살리는 일이다. 그놈은 밤‧낮 언제고 내가 가자면 투정 한 번 없다. 그 정을 못 잊어 함께 하는 그 친구는 밤에도 아침이라는 빡빡 우긴다. 그것도 유식한 척 영어로 모닝이라 한다.

12시에 퇴폐업소를 나와 집으로 온다. 싱그러운 바다어부가를 들으며 황제 점심을 먹는다. 영조임금께 “보릿고개야말로 가장 넘기 힘든 고개인 줄로 아뢰옵니다." 이 말로 후에 정순황후가 되었다는 야사에 꽁보리밥 된장찌개로 배꼽이 미소 짓도록 처먹는다. 한 시간 동안 컴퓨터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뒤지면서 십 원짜리 짜증에 미소도 짓는다. 복잡다단한 소리에 떠밀러 오수에 떨어진다.

오수에서 깨어나 아파트 재활용장을 몇 바퀴나 돌고 돈다. 행여나 누군가한테 버림받은 불쌍한 생활용품에 눈물을 닦아 주려는 마음에서다. 어제는 눈물 콧물 질질 흘리는 쿠쿠 압력전기밥솥은 데리고 왔다. 온몸을 깨끗이 닦아주면서 소박맞은 사연을 물었다. 2016년 낭군님을 만나 부끄러운 새새악시로 시집을 갔다. 불평불만 한번 없이 3식구 식모살이 알뜰살뜰 4년째란다.

“한 날 각재(어느 날 갑자기) 우리 마님께서 사랑하는 반려견이 암에 걸렸다. 쥔장은 ‘입원치료 하자.’ 마님은 ‘통원치료하자’ 다툼이 이혼까지 가는 바람에 죄 없는 밥솥 나도 소박맞았습니다.” “밥솥아! 밥을 못해 소박맞았지” “카지 말고 일단 내가 밥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직접 시켜보시면 알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 “거기 친정집 전화가 있으니 전화로 물어보세요. 내가 밥을 얼마나 잘하는가”

쿠쿠 친정에 전화로 물었더니, “백미‧잡곡‧현미‧김초밥‧검은콩‧누룽지‧잡곡‧영양밥‧영양죽‧만두찜 까지도 잘 한다네” ‘일단 내가 좋아하는 꽁보리밥을 시켜 봐야지’ 결과는 내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지금 나와 같이 사는 가구를 비롯한 식구는 쥔한테 소박맞고 재활용장으로 쫓겨난 불쌍한 친구다. 외출 때면 좋아 날뛰는 운동화 나이키도 소박맞은 놈을 내가 눈물을 닦아 준 놈이다.

저녁밥은 한 몇 숟갈 처먹고 죽은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 죽은 싯다르타와 장자, 신은 죽었다는 니체할배와도 이야기한다. 때론 예수님 부활 이야기도 듣다가 잠이 오면 자는 것이 지개야 하루다.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다 쥐 잘났다고 칸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못난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신생아실에 가 봐라. 아가들도 저마다 잘났다고 울고 짜고 한다. 때론 천사를 꾀는 미소도 짓더라.

어릴 때 그렇게도 기다리던 팔월 한가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8월 ‘한가위’만 같아라.” 그 말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나, 지금은 독거노인과 독살이 노처녀총각은 아마 고개를 좌우로 흔들지 않을까? 하는 한가위가 내일 모래다. 독살이 중놈도 이름난 명절도 싫고, 휴가철이라고 떠는 뉴스도 보기가 싫다. 싯다르타가 말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길’이란 ‘중도’ 역시 최고에 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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