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보리 문디
경상도보리 문디
  • 지개야스님
  • 승인 2019.09.0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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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보리 문디’란 말이 있다. 이 말 발생지는 겉보리농사가 주 작물인 경상도 안동이 아닐까? 다른 지역에는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문디(한센환자 안동사투리) 촌이 안동에는 두 곳이나 있다. 안동은 ‘문디 걸뱅이 되듯이’란 말이 있듯이 깡 보리밥을 구걸하려 다니는 한센환자가 많았다. 안동장날이면, 한센환자와 일반인이 안동장터에서 장거리를 서로 사고팔기도 했다.

안동인은 한센환자와 신시장 개장국밥까지도 겸상했다. 거리감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외지인이 보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안동 막노동자 몇 사람이 호남 지역에 품팔려가서 간이화장실을 만들어 대변을 보았다. 떠난 후에 간이화장실에는 팔뚝 같이 굶은 대변을 본 지역민이 ‘경상도 보리 문디놈들 꽁보리밥 처먹은 똥 무더기 봐라’ 했다는 말도 있다.

보리 원산지는 티베트이며 재배역사는 7,000~10,000년 된다고 한다. 1976년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12호 집터에서 기원전 10세경으로 추정되는 겉보리 혼적이 출토되었다. 이를 근거로 한국 보리재배 역사는 3,000여 년 쯤으로 추정한다. 한국 보리재배는 두 종류다. 껍질이 두꺼운 겉보리(가을보리)와 껍질이 쌀처럼 엷은 쌀보리(봄보리)다. 추위에 약한 봄보리는 호남 지방에서, 추위에 강한 겉보리는 경상도 지방에서 재배했다.

가난에 상징인 보릿고개! 21대 영조임금(1694~1776년)께서 내린 간택령에 뽑힌 규수들에게 “세상에서 가정 넘기 힘든 고개는 무슨 고개인가?” 규수들마다 넘기 힘든 고개이름을 아뢰었다. 규수 김씨는 "보릿고개야 말로 가장 넘기 힘든 고개인 줄로 아뢰옵니다." 이 말로 후에 정순황후가 되었다는 야사가 있다. 한국에 보릿고개란 말은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깊은 역사다.

순돌이 고향 안동 갈라산촌 막장마을에는 벼를 재배할 논은 거의 없고 산비탈 밭이 훨씬 많았다. 그 마을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반말을 못 먹고 시집간다고 했다. 할배, 아부지 밥상에 쌀 몇 개가 보일뿐, 나머지 식구는 깡 꽁보리밥을 먹었다. “방귀 질 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 안동 속어처럼, 턱 없이 모자는 보리양식을 한 톨이라도 더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5월 21일 소만~6월 5일 망종 사이가 가장 넘기 힘든 최악에 보릿고개였다. 햇보리 추수철인 보리망종 전 15~20일경에 아낙들은 덜 익은 겉보리 송이를 따와 껍질째 디딜방아 찧은 보리떡으로 온 식구에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다. 정미소가 없는 순돌이 고향에는 입에 들어가는 곡식은 다 발로 디디는 디딜방아에서 찧었다.

디딜방아는 곡식을 넣는 호박(확)과 방앗공이가 있다. 방앗공이로부터 반대쪽으로 긴 나무 끝 발판을 밞아 방아질을 한다. 디딜방아는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네팔 등에도 있었다. 외국 디딜방아는 일자 긴 통나무 몸통으로 구성되어 한 사람이 밞으면서 방아질을 하는 구조다. 한국 디딜방아는 약 2~3m길이 Y통나무로 된 양다리다.

양다리 디딜방아는 두 사람 혹은 4사람이 밟으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를 불으며 찧었다. 양다리디딜방아는 우리선조님 지혜에 발명품이다. 부분 명칭도 인체에 비위 해 방아머리, 방아허리, 방아다리, 방아가랑이라 한다. 또 입방아, 엉덩방아란 말도 있듯 디딜방아를 사람과 같은 레벨로 아주 귀하게 여겼다. 아직도 우리 귀에 남은 <자진방아타령>, <사설방아타령> 등이 증명하고 있다.

보리방아는 3인 1조다. 갈라산 막장마을에서는 초등학교 2~3학년이면 디딜방아를 쓸어 넣을 줄 안다. 디딜방아에 겉보리를 찧을 때는 순돌이도 함께 했다. 겉보리방아는 3물 찧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겉보리방아를 찧을 때, 물을 너무 적게 뿌려 찧으면 보리껍질이 벗겨져 보리쌀이 되지 않고 보릿가루가 된다. 물을 너무 많이 뿌리면 겉보리껍질이 벗겨지는 것이 아니라 보리죽이 되고 만다.

겉보리방아에서 제일 중요한 뿌리는 물 조정은 어매 몫이다. 겉보리방아를 첫물을 찧고, 방아를 고운대(괴밀대)로 고아 놓는다. 호박에 든 겉보리를 끄집어내어 키로 보리껍질을 까불어낸다. 그렇게 2물과 3물을 찧는다. 아무리 잘 찧어도 보리 꽁지는 그대로 남는다. 디딜방아에 찧은 보리밥을 먹으면 보리 꽁지 때문에 목구멍이 따끔거린다. 해서 ‘꽁보리밥’이라 한다.

순돌이가 초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다. 누나와 어매는 디딜방아를 밟아 찧고, 몸무게가 가벼운 순돌이는 호박에서 겉보리를 쓸어 넣었다. 대구에 사는 또래 ‘배정숙’이가 여름방학이면 외가인 순돌이 마을로 피서를 온다. 보조개 들어가는 배정숙은 하얀 얼굴에 사슴새끼 같은 밝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다. 배정숙 외가 집 소꼴을 해주는 순돌이 따라 소꼴 하려가는 것을 좋아했다.

소꼴하려 같이 간 배정숙은 도랑가재를 무서워하면서도 순돌이가 도랑가재를 잡다가 손가락이 물러서 아파하는 모습에 깔깔거리며 도랑가재를 모닥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산딸기 덩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순돌이는 배정숙이가 좋아하는 산딸기를 따다 받치며 즐거워했다. 배정숙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도 더 해 주고 싶은 순돌이 마음이었다.

보리방아를 쓸어 넣으면서 ‘내일은 어디로 소꼴하려 가면 배정숙이가 좋아하는 산딸기가 많을까? 절골은 어제 갔고 내일은 딸기 많기로 소문난 가장골로 가야지’ 하는 생각에 빠져 디딜방아와 호흡을 맞추지 못해 디딜방아에 머리 내리침을 당했다. 어른이 혼자서 들기엔 좀은 무거운 디딜방아머리가 높이 올라가 내려오는 가속도로 순돌이 머리를 내리쳐 혹을 냈다.

호박으로 달려온 어매는 아프지 않나? 물음대신 겉보리방아를 쓸어 넣던 빗자루로 순돌이를 마구 두들겨 팼다. “나이가 그만한 게 이까짓 것 버리 바도 제대로 못 쓸어 넣는 게 나중에 커서 뭘 해 먹고 살래? 이 맨자구 같은 놈아! 버리를 쓸어 넣으라고 캤지, 언제 대가리를 처여라 카다.” 하시며 안도에 화풀이로 소낙비 맞은 옷에 마른 먼지가 날 정도로 마구 두드려 팼다.

경상도 보리 문디 순돌이는 어매한테 매를 맞으면서도 배정숙이가 좋아하는 딸기 어디 많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픔을 몰랐다. 한센환자처럼 무시당해도 그러려니 하며 살아가는 경상도 보리 문디가 보고 싶다. 조서방 내만 아는 비밀이라고 간사한 입술로 자신과 남을 속이거나 변명하지 마라. 세상에 비밀은 없다. 하늘과 땅, 내 양심은 안다. 조국을 위해 조국을 편 가른 조국 사람들아! 사람과 동물 차이는 동물은 양심이 없고 사람은 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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