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하는 마음
분별하는 마음
  • 김덕권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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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하는 마음(分別心)이란 무엇일까요? 나와 너, 좋고 싫음, 옳고 그름 따위를 헤아려서 판단하는 마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신라 원효대사(元曉大師 : 617~686)의 젊은 시절 바로 분별하고 주착(主着)하는 마음을 버리고 드디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이치를 깨쳐 대각(大覺)을 이루는 일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일체유심조’는 화엄사상(華嚴思想)의 중심으로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니, 인간의 주체적 관점에서 보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의미이지요.

『이토록 깊은 밤, 폭풍우 속에 여인이 찾아올 리가 없지.』 거센 비바람 속에서 얼핏 여자의 음성을 들었던 원효 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탓하며 다시 마음을 굳게 다졌습니다. ‘아직도 여인에 대한 동경이 나를 유혹 하는구나. 내 도를 이루기 전에는 결코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자세를 고쳐 점차 선정(禪定)에 든 원효스님은 휘몰아치는 바람과 거센 빗소리를 분명히 듣는가 하면 자신의 존재마저 아득함을 느꼈습니다. ‘마음, 마음은 무엇일까?’ 원효 스님은 둘이 아닌 분명한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무서운 내면의 갈등에 휘말리고 있었지요.

그때였습니다. 「바지직」하고 등잔불이 기름을 튕기며 탔습니다. 순간 원효스님은 눈을 번쩍 떴습니다. 비바람이 토굴 안으로 왈칵 밀려들었습니다. 밀려오는 폭풍우 소리에 섞여 여자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스님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원효스님, 원효스님, 문 좀 열어주세요.』 스님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망설였지요. 여인은 황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스님을 불렀습니다. 스님은 문을 열었습니다. 왈칵 비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들면서 방안의 등잔불이 꺼졌습니다.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찾아와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인을 보고도 스님은 선뜻 들어오란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스님, 하룻밤만 지내고 가게 해주세요.” 여인의 간곡한 애원에 스님은 문 한쪽으로 비켜섰습니다. 여인이 초막(草幕)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스님, 불 좀 켜 주세요. 너무 컴컴해요.” 스님은 묵묵히 화롯불을 찾아 등잔에 불을 옮겼습니다. 방 안이 밝아지자 비에 젖은 여인의 육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웠지요. “스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 몸 좀 비벼 주세요.” 여인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해 있던 스님은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떨며 신음하는 여인을 안 보려고 스님은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비에 젖어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요?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것. 내 마음에 색심(色心)이 없다면 이 여인이 목석과 다를 바 있으랴.” 스님은 부지중에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는 언 몸을 주물러 녹여 주기 시작했지요.

풍만한 여체를 대하자 스님은 묘한 느낌이 일기 시작합니다. 스님은 순간 여인을 침상에서 밀어냅니다. ‘나의 오랜 수도를 하룻밤 사이에 허물 수야 없지.’ ‘일체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였으니 내 어찌 더 이상 속으랴.’ ‘이 여인을 목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인으로 보면서도 마음속에 색심이 일지 않으면 자신의 공부는 온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여인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는 여인의 몸을 비비면서 염불을 합니다.

여인의 풍만한 육체는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한 생명일 뿐이었습니다. 스님은 여인의 혈맥(血脈)을 찾아 한 생명에게 힘을 부어줍니다.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별이 없을 때 사람은 경건해집니다. 여인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합니다. 정신을 차린 여인은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 앞에 일어나 앉았습니다.

여인과 자신의 경계(境界)를 느낀 스님은 순간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폭풍우가 지난 후의 아침 해는 더욱 찬란하고 장엄했습니다. 간밤의 폭우로 물이 많아진 옥류폭포의 물기둥이 폭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훨훨 옷을 벗고 옥류천 맑은 물에 몸을 담급니다. 뼛속까지 시원한 물속에서 무한한 희열을 느끼는데 여인이 다가왔습니다.

“스님, 저도 목욕 좀 해야겠어요.” 여인이 옷을 벗어 던지고는 물속으로 들어와 스님 곁으로 다가옵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여인의 몸매는 눈이 부셨습니다. 스님은 생명체 이상으로 보이는 그 느낌을 자제하고 항거를 했습니다. 결국 스님은 눈을 부릅뜨고 외칩니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거냐?” “호호호, 스님도.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합니까? 스님이 저를 색안(色眼)으로 보시면서.” 스님은 순간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무한한 혼돈(混沌)이 일었습니다.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이란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 스님의 귓전을 때렸습니다. 거센 폭포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계속하여 여인의 음성이 혼돈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후비고 들어올 뿐!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을 거듭거듭 뇌이면서 원효스님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폭포소리가 들렸고 캄캄했던 눈앞의 사물이 제빛을 찾고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의식되는 눈앞의 경계를 놓치지 않고 원효 스님은 갑자기 눈을 떴습니다.

‘옳거니, 바로 그거로구나! 모든 것이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는 그 도리!’ 스님은 물을 차고 일어섰습니다. 여인은 어느새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띤 관음보살이 되어 폭포를 거슬러 사라졌습니다. 원효 스님은 그곳에 암자를 세웠습니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뜻대로 한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자재암(自在庵)’이라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음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을 그대로 두고는 고요와 지혜, 옳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분별하는 마음이 없이 일체를 하나로 보는 것이 정의입니다. 나와 너, 죄와 복, 선과 악, 그름과 옳음 중, 하나만 취하는 것은 원융함을 외면하는 불의(不義)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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