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복수 위해 모든 고통 감내한 인내의 끝판왕, ‘손빈' 편
완벽한 복수 위해 모든 고통 감내한 인내의 끝판왕, ‘손빈' 편
  • 임나경 작가
  • 승인 2019.08.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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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 속 인물들의 매력을 찾아서(2)
냉정한 복수의 화신이자 병법가인 '손빈'의 초상화 (그림출처 네이버백과)
냉정한 복수의 화신이자 병법가인 '손빈'의 초상화 (그림출처 네이버백과)

떠올리기만 해도 숨겨진 감정을 건드리는 원초적이고도 자극적인 불씨이자, 인류가 생겨난 뒤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오랜 앙갚음의 의식인 ‘복수’. 자신의 평화를 위해 복수하기보다 용서하고 끊임없이 사랑하라고 하나,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에게 자비로운 용서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식음을 전폐하며 복수의 날만 꿈꾸는 이들에게 그러한 교훈은 고문으로 다가오기에 십상이다. 하여 우리네 인간들은 개인적으로 타당성을 부여한 행위인 복수를 통해 이 시간까지도 수많은 사건 사고를 재생시키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혈육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파란만장한 뜨거운 삶을 살았던 ‘오자서’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자신을 시기한 졸렬한 동기로 인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기나긴 세월을 인내하며 철저히 보복을 준비한 ‘손빈’을 소개하고자 한다. 손빈은 치밀하게 계산된 냉정한 행보로 마지막까지 승리한 고요하고도 차가운 복수의 화신이다.

'손빈'이 저술한 '손빈병법'. 손빈은 '손자병법'을 저술한 '손무'의 자손이다 (사진출처 다음백과).
'손빈'이 저술한 '손빈병법'. 손빈은 '손자병법'을 저술한 '손무'의 자손이다 (사진출처 다음백과).

 

오욕의 시간을 참고 견딘 면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으나 두 사람의 복수의 과정은 마치 타오르는 ‘불’과 차가운 ‘얼음’처럼 매우 다르다. 정열적인 성격을 지닌 오자서는 오로지 부모 형제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 나라의 왕을 움직여 자신의 조국까지 전란에 휩싸이게 할 정도로 화끈한 복수를 하였지만, 차분하고 냉정한 손빈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저앉히며 상대를 속이고 자신을 철저히 숨기는 조용한 복수를 선택하였다. 두 사람의 성격이 너무도 달랐기에 말년 또한 극과 극의 양상을 띤다. 강직하고 격정적인 성품의 오자서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뒤 안가리고 오로지 복수를 위해 경솔하게 끌어들인 ‘백비’의 배신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비교적 차분한 성격의 손빈은 모든 것을 이루고 나서는 일선에서 물러나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선택하였다.

오자서와 손빈은 복수의 삶을 살았다는 공통점 외에도 ‘손무’라고 하는 인물과 인연이 있다는 재미난 사실을 찾을 수 있다.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던 오자서의 복수는 제나라 사람인 ‘손무’라는 최고의 병법 전략가를 오나라에서 만남으로서 가능하게 되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손무는 <손자병법>이라는 중국 최초 병법서를 집필한 이다. 즉, 오자서와 손무의 만남은 완벽한 합체인 셈이었다. 반면 손빈과 손무의 관계는 혈육으로 이어져 있다. 손빈은 손무의 사망 후 150년이 지나 태어난 자손이다. 이 손씨 가문의 경우 명석한 두뇌는 유전되는 것인지 손빈 또한 손무를 이어 <손빈병법>이라는 자신만의 훌륭한 병법서를 남겼다(<손빈병법>은 <손자병법>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 병법서로 1972년 4월 중국 산동성에서 발견되었다).

손빈은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 명석함을 물려받았으나, 불행하게도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기인으로 소문난 ‘귀곡자’의 제자로 들어가 수학하게 된다. 타고난 총명함으로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손빈은 이내 서출인 ‘방연’에게 질투의 대상이 된다. 남달리 출세욕이 강한 방연은 명석한 손빈이 언제든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서자라는 태생이 그에게 평생 열등감이라는 굴레를 덮어씌웠던 것이 분명하다. 위나라의 높은 관직에 오르고서도 방연은 손빈에 대한 그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철저하게 그를 파멸시키기로 작심한다.

손자와 손빈의 모습으로 장식된 ‘은작산 한묘 박물관’ 입구 (사진출처 네이버포토)
손자와 손빈의 모습으로 장식된 ‘은작산 한묘 박물관’ 입구 (사진출처 네이버포토)

음흉한 속내를 감춘 채 방연은 같은 스승 아래 수학한 사제로서 손빈을 위나라로 부른다. 위나라로 떠나기 전 스승 귀곡자는 제자의 힘든 앞날을 예감하고 그 이름을 종지뼈를 의미하는 ‘빈(臏)’으로 바꾸라고 한다. 이것은 후일 방연에 의해 적국의 간첩으로 모함받아 무릎 아래 뼈인 슬개골을 잘라내는 형벌을 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스승은 제자의 험난한 여정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돌변하여 자신을 간자로 몰아세우는 방연에 의해 하루아침에 앉지도 서지도 못해 기어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고 이마에 자자형까지 새겨진 손빈은 오로지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방연의 감시 아래, 오로지 살기 위해 손빈은 미친 척 깔깔대며 돼지우리의 똥을 집어먹고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는지 제나라 사신이 위나라에 왔을 때 그의 도움으로 손빈은 극적으로 지옥을 탈출하게 된다.

제나라에 간 손빈은 장군 ‘전기’의 빈객으로 머물던 중 곧 그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왕에게 군사로 천거된다. 그러나 손빈은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복수의 설계도를 그려나간다. 모국인 제나라의 국력을 신장시킨 그는 적을 안심시켜 허를 찌르는 방법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전장에서도 손빈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가려진 검은 마차에서 군사를 지휘한다. 즉, 방연에게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존재를 은근히 알려 더 큰 두려움을 선사한 것이다. 그의 뛰어난 전략이 돋보이는 예로 ‘계릉’과 ‘마릉’에서의 전투가 유명한데, 특히 마릉 전투에서 방연의 거만한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손빈은 부뚜막을 줄여나가며 적군이 오판하도록 유도하였다. 헤이해질 대로 헤이해진 적을 마릉이란 협곡에서 제나라 군대는 매복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무고한 동기의 삶을 철저히 망친 대가를 치른 방연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탄식하며 자살하였고, 제나라에 큰 선물을 안겨준 손빈은 아쉬워하는 왕의 손을 뿌리치고 미련 없이 산으로 들어가 조용한 삶을 살았다고 전한다.

'손빈'을 그린 영화 '전국 천하영웅의 시대'의 한 장면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손빈'을 그린 영화 '전국 천하영웅의 시대'의 한 장면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비뚤어진 질투로 억울하게 희생된 세월을 손빈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극도의 분노를 삼키고 삭히며, 더 철저히 스스로를 감추고 또 감추며 냉정하게 복수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루고는 눈앞에 다가올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평범하나 평화로운 말년을 선택했다. 반면 오자서는 한 나라의 재상으로서 그 능력을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를 감추지 않았고, 복수를 이루고 난 뒤에도 고관대작으로서 위치를 포기하지 않다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복수는 또 다른 원동력’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우울한 여정이다. 격렬한 증오는 자신까지 집어삼키는 무서운 괴물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이내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더 큰 불행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어 버린다. 그러기에 뜨거운 분노로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활활 태운 오자서보다 매순간 강인한 의지로 분기를 다스리며 완벽한 복수의 여정을 이루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손빈의 냉정한 결단이 더 큰 감동과 매력으로 다가온다.

한평생을 복수의 신에게 오롯이 바친 서로 다른 시공간의 두 남자 오자서와 손빈.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고 잊혀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상처에 연연하는 그들의 삶은 미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통을 부여잡고 끈질긴 인내로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두 사나이의 극적인 삶은 완벽한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며 영원한 감동을 선사한다.

[임 나 경 (林 娜 慶)]
소설가, 각본가.

<출간작>
'곡마’, 황금소나무, 2016
'대동여지도 : 고산자의 꿈’, 황금소나무, 2016
'사임당 신인선 : 내실이 숨긴 이야기’, 황금소나무, 2017
'댐 : 숨겨진 진실’, 황금소나무, 2017
'진령군 : 망국의 요화’, 도서출판 밥북, 2017 (24회부산국제영화제 2019아시아필름마켓북투필름 선정작)

<시나리오>
'방문객(The Visitor), 2017. 8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초청작
'미라클(The Miracl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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