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회복 칼럼] “가장 바람직한 한일(韓日)관계는?”
[인성회복 칼럼] “가장 바람직한 한일(韓日)관계는?”
  • 이상만 시니어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9.08.14 18: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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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서 빛나는 태양 품기 ‘가장[最]’ 시리즈 10

가장 최(最) 시리즈가 끝날 때가 왔다. 열 십(十)이면 동양에서는 완성의 숫자다. 보통 십(十)을 열 개의 수량인 아라비아 숫자 10으로 이해하는데, 이를 넘어서서 뜻글자인 한자 십(十)자의 속성대로 ‘많다’ 또는 ‘완성’의 뜻으로 이해하면 그만큼 사고의 깊이와 폭이 깊어지고 넓어진다고 하겠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성어는 많은 사람이 조금씩 덜어주면 한 그릇의 밥이 된다 하여 없는 사람을 도와줄 때 흔히 사용한다. 교회나 성당에서 성도들이 헌금을 내어 운영에 쓰는 돈을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낸다 하여 십일조라 하기도 한다.

공자는 역경(易經)을 편찬하면서 열 가지 해설서인 십익(十翼)을 달아 완성했으며, 모세의 십계명(十誡命)도 있고,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혔다가 부활한 예수도 있고,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쓴 원효 스님도 있다. 원래의 십(十)은 사람의 양쪽 손가락 합이 열 개이며 상하좌우(上下左右) 사방으로 많은 일을 손으로 이루어 내고 완성(完成)시킨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는 상고대 동이족의 정신문화를 말해주는 천부경(天符經)에도 엄연히 일적십거(一積十鉅)라 하여 진리의 근원인 하나가 쌓이고 쌓여 완성된 금자탑을 쌓는다는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르다.

과거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도 살 수 있는 계층이 군주시대의 백성(百姓) 또는 서민(庶民)이라 하였으나 오늘날 민주화 시대에서는 누구나 학식과 교양이 일반화되어 대중(大衆) 또는 민중(民衆)으로 분류하고 있다. 민주(民主)는 문자 그대로 자기 스스로 주인의식을 깨닫고, 남과 더불어 공생공영(共生共榮)하는 길로 나아가는 가치관이 있다. 소위 백성이 주인이 되며 그에 합당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이다.

최근 동아시아에 큰 변란이 일어났다. 20세기에 무기를 앞세운 침략전쟁의 역사가 지나가고, 마침내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경제 전쟁인 전(錢)의 전쟁이 일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일본 총리 아베가 전격적으로 수출규제를 논하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를 경제보복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초래하였다.

이에 질세라 한국에서는 민간차원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구호가 있다. “독립운동은 못했으나 불매운동은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전통적 항일 정신의 발로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베가 한일양국관계에서 자충수를 둔 것이다. 금년이 한국인에게는 일제 침략으로 인한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난 한 맺힌 100년이 되는 해이다. 국내외서 ‘상기하자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시점이다. 더욱이 첨단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을 능가하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 삼성이 비메모리 분야에도 거액의 투자계획을 발표하자, 위기를 느낀 나머지 서둘러 내린 판단착오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100년 전 조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마지막 조선총독을 지낸 자신의 조부(祖父)가 예언한 “한국은 식민교육으로 심어놓은 당파싸움으로 다시 망한다.”고 한 말을 기억이나 한 듯 무모한 경제 전쟁에 불을 지폈다. 마치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였다가 원폭을 맞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어버린 일을 되풀이하는 격이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자충수에 말려들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국제관계에서 IMF 외환위기 같은 깊은 상처를 다시 겪게 될지도 모른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고, 조급한 아베의 심정을 위로하면서 대화와 협상이라는 카드를 제시하여 상호 윈윈(winwin)하는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 이는 국민을 살리는 지도자의 숙명(宿命)이자 곧 천명(天命)이기도 하다.

과연 가장 바람직한 한일관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論語(논어)》<학이 편>에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라 하였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길이 생긴다. 지난 20C처럼 상대를 일방적으로 맞대응하여 몰아붙임이 아니라 지구공동운명체로서 일체감(一體感)을 갖고 멀고도 가까운 선린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相生(상생)하여 나아가는 길이 있다. 21C는 세계가 “우리는 하나[We are one]”를 지향하고 있다.

가장 最(최)자를 꿰뚫어 보면 핵심이 보인다. 가장 바람직한 한일관계는 한일 양국의 수뇌(首腦)가 한 일(一)을 스스로 깨닫는 데 있다.

"하느님 가라사대[曰] 한 일(一)을 취(取)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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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자 2019-08-19 15:14:31
좋은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