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과 용기로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김금원’
자의식과 용기로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김금원’
  • 임영근 기자
  • 승인 2019.06.2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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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하고 아름다운 도전자
역사 속 인물들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서(26)
김금원의 '호동서락기'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김금원의 '호동서락기'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여행이란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을 씻기 위한 휴식의 과정이자 견문을 넓힘으로써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한 평화로운 수양이기도 하다. 특히, 보통 사람은 감히 도전도 못할 오지나 혹독한 여행 과정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내어 감탄을 금하지 못하게 하는 여행가들이 많은데, ‘로지타 포브스’, ‘더블라 머피’처럼 남성도 도전 못할 힘든 여정을 꿋꿋한 의지로 이겨냄으로써 찬사를 받는 여성인 여행자들도 있다.

우리의 역사에도 위에 소개한 현대 여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용기와 굳은 마음으로 남자들도 감히 나서지 못한 여정을 훌륭히 마치고 멋들어진 기행문까지 남긴 당찬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19세기를 살았던 조선 여인 ‘김금원’이다. 김금원은 순조 17년 양반이었던 아버지와 기녀 출신으로 소실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금원의 ‘금원’은 ‘금원당’이라는 스스로 붙인 호이므로 그의 실명은 알 수가 없다. 어릴 적 병치레가 잦았고 남달리 총명했던 그에게 개방적이었던 부모는 당시 여성이 도맡아 하던 힘든 가사보다 글공부를 가르쳤는데 이로 인해 김금원은 경서와 역사서까지 두루 통달하게 되는 지식을 갖추게 된다. 또한 당대 뛰어난 시인으로 이름난 ‘기각’이라는 고모와 자주 편지로 소통하며 김금원은 문인으로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짐승이 안 되고 인간이 된 것은 다행이다. 오랑캐 땅에 태어나지 않고 문명의 나라 조선에 태어난 것도 다행이다. 그러나 남자가 되지 않고 여자가 되는 것만은 불행이다”는 그의 말에서 남녀와 서얼의 차별이 극심한 조선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주와 기량을 마음껏 떨쳐보지 못한 한계를 깨우친 깊은 슬픔과 고통이 느껴진다. 그러나 김금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14살의 어린 나이에 대담한 도전을 준비한다. 바로 당시 남자들조차 감히 엄두 내지도 못한 여행을 홀로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부모들은 극렬히 반대했으나 이미 굳을 대로 굳은 그의 결심을 돌이킬 수 없었다. 아마도 당시 15세가 되면 남성은 성인으로서 상투를 틀었고 여성은 혼례를 치러 한 남자의 아내로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역할을 시작해야 했기에 틀에 박힌 고루한 삶을 시작하기 전, 짧게라도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통해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진지한 자아 성찰을 하고 싶은 열망이 컸을 것이다. 이러할진대 세상 그 어떤 것도 그의 열망을 사그라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삼호정시사가 활동한 삼호정 터(사진출처 네이버포토)
삼호정시사가 활동한 삼호정 터(사진출처 네이버포토)

결국 허락을 받은 김금원은 남장을 하고 제천 의림지, 단양을 거쳐 금강산의 빼어난 풍경을 야무지게 구경한 뒤 관동팔경, 설악산, 한양을 둘러보고 나서야 여정을 마쳤다. 여성이 여행을 하는 것은 <경국대전>에 장 100대를 칠 정도로 엄히 금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당시 여인이 남장을 하는 것은 첩자로 오인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는데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남장을 선택한 것을 보면 김금원은 배포가 남다른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행을 마친 뒤, 그는 종모법에 따라 어머니처럼 기적에 이름을 올려 기녀로서의 삶을 살다 17살 연상인 ‘추사 김정희’의 육촌 형제 ‘김덕희’의 소실로 들어갔다는 설도 있고, 부모의 곁에 머무르다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을 평범한 여인이 아닌 뛰어난 기량을 갖춘 문인으로서 아낀 남편으로 인해 그는 본부인을 제치고 남편과 함께 경기 이북, 황해도, 평안도 일대를 자유롭게 유람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흘러 같이 시문을 나눈 동료들의 격려로 14살 어린 나이의 여행담과 남편과 동행한 여정을 모두 모아 34세에 <호동서락기>란 시집 형태의 기행문을 집필하게 된다. 충청도의 호서지방의 ‘호’,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동’, 평양과 의주 등 관서지방의 ‘서’, 서울 한양의 ‘락’을 둘러본 기록이라는 뜻으로, 이 책은 금강산 여행의 필독서로서 1925년 금강산을 여행한 독일 신부 ‘베버’의 글에도 나올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사회와 신분의 한계로 어쩔 수 없이 서녀로서 양반가의 소실이 되었지만 그의 타고난 재주와 기량은 내실에 숨겨지지 않고 이내 조선 최초 여성으로 구성된 시단인 <삼호정시사>를 탄생시킨다. 지금의 용산 지역에 있는 삼호정이란 정자에서 그는 자신과 같이 뛰어난 시재를 갖춘 여동생이자 주천 홍태수의 소실 ‘경춘’, 연천 김이양의 소실 ‘운초’, 화사 이판서의 소실 ‘경산’, 송호 서기보의 소실 ‘죽서’와 함께 한강의 풍광을 시로 읊으며 신분제 사회에 태어난 여성으로서의 깊고도 슬픈 마음을 달랜다. 남성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그녀들의 시단 활동을 곱게 보지 않았고 시단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던 죽서의 죽음과 김금원의 남편이 다른 곳으로 이사함으로 인해 그녀들의 활동은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 삼호정시사의 작품들은 조선 여성 문학사에 큰 기여를 한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김금원은 당대 최고 문인들이었던 ‘홍한주’, ‘신위’, 서유영‘ 등과 교류를 가졌고 당시 사대부가 남성들은 그와 친분을 가짐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할 정도로 시인으로서 남성을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김금원이 전국일주의 첫 여행지로 삼은 제천 의림지 풍경(사진 출처 네이버백과)
김금원이 전국일주의 첫 여행지로 삼은 제천 의림지 풍경(사진 출처 네이버백과)

삼호정시사 활동을 그만둔 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851년에서 1856년 사이에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긴 삶을 살지 못했으나 남성 중심의 신분제 사회에서 서녀로 태어나 매우 과감하게 모든 틀을 깨고 도전한 그녀의 행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

“모든 물이 동쪽으로 흘러가니 깊고 넓어 아득히 끝이 없네. 지금 알겠네. 천지가 크다 해도 내 가슴에 담아낼 수 있음을.”

<호동서락기>에 실린 김금원의 시를 읽으면 겹겹이 둘러싸인 멍에를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그의 처절한 노력이 엿보인다. 아울러 아무리 힘든 여건 속에서도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 결기를 잃지 않는다면 꼭 이룰 수 있다는 가슴 뛰는 설렘과 위로를 이백년 전 살았던 그에게서 얻을 수 있다. 도전은 자신을 오롯이 내던지고 최선을 다하는 그 의지와 용기로 인해 빛이 나고 찬사를 받는다. 삶의 무기력한 좌절 앞에서 그의 의지와 용기를 떠올리며 어제보다 더 행복한 오늘을 시작해보고 싶다.

임 나 경 (林 娜 慶)
소설가, 각본가.

<출간작>
'곡마’, 황금소나무, 2016
'대동여지도 : 고산자의 꿈’, 황금소나무, 2016
'사임당 신인선 : 내실이 숨긴 이야기’, 황금소나무, 2017
': 숨겨진 진실’, 황금소나무, 2017
'진령군 : 망국의 요화’, 도서출판 밥북, 2017

 

<시나리오>
방문객(The Visitor), 2017. 8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초청작
미라클(The Miracl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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