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한계를 넘어서
선악의 한계를 넘어서
  • 김경수 시니어기자
  • 승인 2019.06.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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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용서할 줄 아는 삶

광주에서 30년을 넘게 살다 시골에 내려와 산 지도 이제 4년이 되어 간다.
지금 사는 곳은 군에서 택지 조성하여 분양한 곳인데 마을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저수지가 있어 그런대로 답답한 느낌은 없이 살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환경인 줄 알았는데, 돌을 채취하는 석산이나 풍차 등이 설치되면서 많은 문제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석산과 풍차 등을 설치하면서 생기는 보상 문제로 마을 주민의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주민들이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금전 문제가 개입되면 생각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돈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서로 간에 생각이 다르고 포용력이나 가치관이나 지향하는 바가 다른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기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있다.

주민들끼리 화합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긍정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웃이 아니라면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나, 하나의 공동체 안에 살아가야 하므로 어느 정도 시비를 가려줄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마을에 건전한 판단력을 지닌 어르신이 있어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분의 조언을 듣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덕불고(德不孤)라는 말이 있지만, 덕을 베풀 줄 알아서 친구가 많고, 이웃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일지라도 마음속에 외로움을 온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본다. 마음의 수양을 위해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할 수 있으나 우리는 홀로 살기 힘들고 이웃이 필요하고 또 소중하다. 심지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웃일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상대방과 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전락해서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취하면서, 함무라비 법전의 말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으로 산다면 선악의 경계 안에 얽매이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웃이 베풀어주었던 것은 잊고 서운한 것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인정하고, 서로가 온전하지 못한 인간임을 깨달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용서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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