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인 예술관으로 예술적 성도를 달성한 매화 덕후, ‘우봉 조희룡’
독자적인 예술관으로 예술적 성도를 달성한 매화 덕후, ‘우봉 조희룡’
  • 임나경 소설가/수필가
  • 승인 2019.04.2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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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들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서(24)
조희룡이 엮은 야담집 '호산외사' (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회).
조희룡이 엮은 야담집 '호산외사' (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회).

매화를 흔히 봄의 전령사로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지겨운 겨울의 한기 속에 다사로운 온기가 미약하나마 느껴질 때, 파리한 가지 끝에서 안간힘을 쓰는 매화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꽃샘추위도 너끈히 견딜 인내가 봄의 설렘과 함께 조금씩 생겨난다.

2018년 3월 10일 <역사 인물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서> 11회 칼럼 ‘한평생 나비를 사랑한 낭만 묵객, 일호 남계우’ 편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비에 대한 짝사랑으로 뜨거운 삶을 살았던 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 오늘은 70년 넘도록 매화만을 온전히 사랑했던 매화 덕후 ‘우봉 조희룡’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희룡은 조선 문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19세기 묵장의 영수로 추앙받는 인물로 중인 출신이었으나 시서화에 뛰어나 문인, 화가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본관은 ‘평양’, 자는 ‘치운’, 호는 ‘우봉’, ‘석감’, ‘철적’, ‘호산’, ‘단로’, ‘매수’이다. 정조 치하인 1789년 지금의 서울 노원구 월계동인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난 그는 부유한 중인 집안 출신이라고도 하고, 전남대 ‘이선옥’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평양 조씨 가문인 개국공신 ‘조준’의 15대손으로 고조부 때까지 당상관의 벼슬을 이어왔으나, 증조부 ‘조태운’이 서얼인 관계로 이후 중인가계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25세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무관의 삶을 시작한 선생은 이후 문인화를 공부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가기로 결심한다.

조희룡이 그린 '홍백매8곡병' (그림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희룡이 그린 '홍백매8곡병' (그림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 대표적 여항시사인 ‘벽오사’의 수장으로 활동한 선생은 <역사 인물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서> 2018년 4월 11일 12회 칼럼에서 소개한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기도 하다. 비록 자신보다 세 살 위였으나 김정희를 오십 년 동안 깍듯하게 스승으로 모시며 극진히 예를 다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1851년 왕실전례에 개입되어 김정희의 심복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라남도 임자도에 유배된 선생은 1853년 해배될 때까지 힘든 귀향살이를 견뎌내야 했다. 조희룡의 유배 기간은 스승인 김정희보다 8개월이나 더 길었는데 이는 중인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부여된 부당한 처사라고 보는 의견들이 많다. 그러나 현명했던 선생은 이 고난의 기간 동안 총 19점의 작품 가운데 8점이 창작되었을 정도로 예술가로서의 최고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뜨거운 예술혼을 불살랐다고 한다.

조희룡이 그린 '매화서옥도' (그림출처 간송미술관)
조희룡이 그린 '매화서옥도' (그림출처 간송미술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조희룡은 요즘 유행어로 매화를 너무도 사랑한 매화 덕후였다. 선생의 유작 중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매화도가 많아 매화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선생에 앞서 매화를 사랑한 인물들은 많았다. 유명한 ‘매월당 김시습’과 매화를 처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매처학자라고 물린 중국 송나라의 시인이었던 ‘임포’ 등이 있으나 조희룡의 매화 사랑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자신의 호를 매화 늙은이라는 뜻의 ‘매수’라고 하였고 매화를 그리다 백발이 되었다고 할 정도였다. ‘매화백영루’라고 명명한 자신의 거처에 직접 그린 매화 병풍을 방 안에 둘러치고 매화에 관한 시가 새겨진 벼루, ‘매화서옥장연’이라는 먹을 애용하였으며 ‘매화시백영’을 지어 읊다가 갈증이 나면 매화편차를 달여 마셨다고 한다. 말년에는 매화를 예찬한 <석우망년록>을 남겼으니 과히 전무후무한 매화의 진정한 연인이다.

선생은 최고의 서예가이자 최고의 문인화 <세한도>를 남긴 김정희의 제자답게 글씨는 추사체를 본받고 산수와 사군자를 즐겨 그렸으나, 스승의 예술관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유롭고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특히 매화와 난을 그린 작품에서는 문기를 중시하는 당시 사대부가의 담백하고 절제된 문인화와는 달리 문인화의 정수된 정신은 그대로 물려받되, 예술가로서의 기량인 성실히 수련된 손재주 또한 중시하여 자유롭고 강한 개성을 보여준다. 양반 출신인 스승 김정희에게 조희룡의 묵란도는 그러한 문인화의 정수가 없다고 혹평을 받기도 하였으나, 독자적인 노선을 선택한 선생의 작품은 당대 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선생의 작품 성향은 당시 상공업 발달과 더불어 실학과 청의 고증학이 수용된 사회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양반을 제외한 부를 축적한 신분 계층들이 예술계의 중요한 소비자로 등장하였고, 중인들이 중심이 된 여항화가들의 활동으로 새로운 화풍이 탄생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당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문화예술관을 지닌 조희룡은 화단의 수장으로서 적임자였을 것이다. 산수화에서도 타인과 동일한 창작의 여정을 선택하지 않은 선생답게 조선만의 은은하고도 고요한 풍경을 담아낸 독특한 조선의 산수화도 그려내어 화단에 고요한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조희룡이 그린 '묵란도' (그림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희룡이 그린 '묵란도' (그림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문장가로서 ‘벽오사’를 이끈 인물답게 조희룡은 56세에 저술한 <호산외기>에서 역관, 화원, 의원, 악공, 바둑꾼, 책장수, 아전, 노비에 이르기까지 한양의 다양한 직업과 신분을 지닌 42인의 일화를 재밌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이들 중 자유롭게 살다간 화가 ‘최북’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즉, 양반을 제외한 인물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데, 진솔하고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선생은 “모두 적막한 구석에서 초목처럼 시들어 없어지기에 이것을 기록해 둔다”라고 서문에서 밝혀 고된 삶 속에서 시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숨겨진 이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유배된 조희룡이 머물렀던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의 적거지 (사진출처 목포시민신문).
유배된 조희룡이 머물렀던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의 적거지 (사진출처 목포시민신문).

78세로 삶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소신을 갖춘 창작인으로 예술의 성도를 이룬 우봉 조희룡. 외롭고도 힘든 여정을 가는 수많은 문화예술인에게 희망과 원동력을 부여하는 최고의 스승이자 영감 그 자체라고 갈채를 보내고 싶다. 글을 마무리하며 귀양에서 풀려나 한양으로 향할 때 지었다는 선생의 시를 소개한다. 역경을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키는 선생의 의지를 떠올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주어진 삶을 더 적극적으로 살아내었으면 한다.

“햇살 따사롭고 산들바람 부는 옛 나루터 잔잔한 봄 물결 기름보다 푸르다. 석양은 끝없어 지금이 좋으니 어찌 지나간 시절 근심으로 아파하리.”

[임 나 경 (林 娜 慶)]
소설가, 각본가.

<출간작>
'곡마’, 황금소나무, 2016
대동여지도 : 고산자의 꿈’, 황금소나무, 2016
사임당 신인선 : 내실이 숨긴 이야기’, 황금소나무, 2017
'댐 : 숨겨진 진실’, 황금소나무, 2017
진령군 : 망국의 요화’, 도서출판 밥북, 2017

<시나리오>
방문객(The Visitor), 2017. 8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초청작
미라클(The Miracl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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