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회복 칼럼] ‘가장[最]’ 시리즈 3 “최고(最高)와 최저(最低)”
[인성회복 칼럼] ‘가장[最]’ 시리즈 3 “최고(最高)와 최저(最低)”
  • 이상만 시니어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9.04.09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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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서 빛나는 태양 품기

가장 높은 것과 가장 낮은 것의 관계는 상대적(相對的)이면서 절대적(絶對的) 관계이다. 눈으로 보이는 산(山)을 예로 들어보면 가장 높은 산은 하나이지만 가장 낮은 산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공인된 가장 높은 산은 네팔과 중국 국경 사이에 있는 에베레스트산(8,848m)이다. 반면에 가장 낮은 산은 정할 수 없다고 한다. 나라마다 그 수가 많고 기준 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모든 나라는 높은 산과 낮은 산을 보유하고 있다. 높은 산은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상이 넘친다고 하면 낮은 산은 많은 백성이 기대고 사는 삶의 터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나이답게 높은 산을 정복한다는 도전 정신을 일깨우기도 하는가 하면 사람답게 낮은 산에서 땀 흘리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 평화롭게 살고자 하였다. 이처럼 높거나 낮거나 일장일단이 있는 점에서는 보편적이지만 결코 가장 높다는 것은 특수적인 것이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인간사에 비유하면 가장 높은 왕이나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낮은 신분의 수많은 백성이 있었는데 옛 군주(君主)시대로 가보면 왕이 주인 행세를 했다면 민주(民主)시대에는 당연히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도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였다. 그렇다고 국민 모두가 과거 왕처럼 행세해야 한다는 법률 조항은 없다. 단지 과거 왕이 지녔던 독재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국민의 의지를 고루 반영시켜 평등한 새 정치를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것도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각자와 선구자들이 피나는 희생을 무릅쓰고 고난의 길을 걸었던 뒤끝의 이야기이다.

이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는 선배나 선대의 눈물 어린 시대적 고통과 고뇌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다시 후배와 후대에 넘겨줘야 하는 사명도 있는 것이다. 가장 주인 노릇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장 간명하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가장 最(최)’ 자로 들어갔다 나오면 될 것 같다. 즉 성현(聖賢)의 말씀[曰]을 일편단심[一]으로 귀담아듣고[取] 행동에 옮기면 된다. 이 훈련이 잘되어 있으면 일취월장(日就月將)할 것이나 평소에 무감각하면 자기 생각에 집착하여 판단하므로 좌충우돌하면서 부정적 현상에 얽매인다. 소위 선입견(先入見)과 편견(偏見)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 한 예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적폐청산 문제라 하겠다. 적폐란 어느 특정한 집단의 잘못만이 아니다. 그 시대의 모두가 앉았던 폐단으로 폭넓게 인식해서 근본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적폐를 시정하겠다고 하면 이미 적대관계에 선을 긋고 싸워서 청산하려고 하므로 상대적으로 코너에 몰린 쥐가 죽자 살자 고양이에 덤비는 형국으로 가게 된다. 국민 다수는 이런 낡은 방식으로 정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야 간의 싸움과 투쟁에 신물이 나 있다.

최근 식목일을 전후하여 강원도 고성과 속초와 강릉 일대에 큰 산불이 났다는 긴급보도와 어느 정도 불길을 잡았다는 연합뉴스를 연일 시청하면서 한순간에 집과 재산을 잃은 이재민들의 심신이 얼마나 힘들까 걱정을 했는데 이 상황에서 여야가 공동대책을 세워서 시급히 해결해간다는 반가운 정가 소식도 들렸다.

이어 스포츠 소식에서 관심이 간 뉴스는 손흥민 선수가 소속팀인 토트넘 새 구장에서 첫 골을 넣었다는 인터뷰 내용이다. 손 선수는 밝은 표정으로 “가장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가장 중요한 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팀의 동료, 스태프, 펜과 함께 하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 손흥민의 소감을 듣는 순간 이국땅에서 한국인으로서 적응하려고 얼마나 많은 연습과 준비를 했겠는가! 마치 공자 말씀대로 극기복례(克己復禮) 위인(爲仁)이라, 아마도 인간의 본성이자 인간 최고(最高)의 경지라 하는 인(仁)을 이루기 위하여 가장 많은 땀을 흘리면서 고통을 이겨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가장’이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쓴 긴 여운이 마음에 이내 가시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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