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악의 언어
[칼럼] 최악의 언어
  • 김유혁 단국대 종신명예교수
  • 승인 2018.12.24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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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가운데서 가장 나쁜 것은 (言語之最惡)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말이다(莫大於造誣)."

이 말은 명나라 여곤(呂坤)의 저서인 신음어(呻吟語)에 실려 있는 구절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것 가운데,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다.

왜 나쁘냐하는 것은 송나라 여조겸(呂祖謙)의 말을 인용해서 언급하였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속임을 당한다는 것은 신상의 해로움을 당할 뿐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속인다는 것은 나 스스로의 마음을 상해(傷害)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受欺害身, 欺人害心:欺人心死)”이는 거짓말로 인해 스스로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양심이 지니는 완전성을 무너트리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인격과 덕성,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품위를 풍길 수 있다는 것은 양심의 완전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옥으로 만든 구슬이 흠집을 지니면 제값을 받을 수 없듯이, 사람이 양심의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떳떳할 수가 없다. 그것은 양심의 완전성이 무너진 탓이며 거짓말을 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속이게 되고 그 속임수는 다른 이에게 손해를 끼치기에 앞서 자신의 양심을 손상시키기 때문인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일직이 서화담 선생(徐花潭:徐敬德, 1489-1546)은 세상의 거짓말 풍조를 외화어묘, 비지역자(外化語妙, 非知易者)라는 한마디로 꼬집기도 했다. 말의 묘미를 어떻게 음미해야 할 것인가? 말의 꼬리를 잡아 다투는 것을 언쟁(言爭)이라 한다. 언쟁이 지니는 가장 큰 폐단은 내용 없는 말의 닌빌(亂發)뿐이라는 점이다.

정치인의 언쟁은 소속정당의 유리한 입장을 전제로 한다. 정책과제를 뒷전으로 제쳐놓는 예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부 학자들의 언쟁은 학파 혹은 계파에 따라 문제를 제기한다. 아집 논리를 무조건 옳다고 우겨대려는 데서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정당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국리민복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안(事案) 앞에서도 설전으로 시간과 정력을 허비할 때가 많다

힘의 논리는 간만(干滿)의 조류와 같아서 언제나 번복의 가능성을 지닌다. 그와 같은 번복의 역사가 조선조 중기의 사화사건(士禍事件)이다. 어제의 승자논리가 내일의 패자논리로 뒤바뀌는 과정에서 국론은 분열된다. 그리고 국력은 소모되고 국민은 피곤해진다. 즉 국론분열, 국력소모, 민심혼란의 현상이 동시에 병발한다.

그 3가지가 동시에 역진성(逆進性)을 들어낼 때 국운(國運)은 기운다. 그와 같은 사실을 보아온 서경덕(徐敬德) 선생은 개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18세 때 대학을 읽다가 격물치지론(格物致知論)에서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벼슬길 나서기를 단념하고 도학공부에 전념했다는 것이다. 격물치지란 사물을 접하게 될 적마다 그 원리를 터득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그 어머니의 권유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을 뿐, 출사에는 별로 뜻을 두지 않았다. 당시의 사회상이 아마도 그로 하여금 출사를 단념케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기설(理氣說)과 태허설(太虛說)에 심취했다. 귀신생사론(鬼神生死論) 등을 세상에 펴내기도 했다. 당시의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원칙(原則) 없이 살아가지 말도록 경고했다. 그로 인해 깨우침을 받은 이들은 고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편 가르기 식으로 말을 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크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대결논리를 펴가는 이들이 설치고 있다. 사회적 현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불거질 수 있는 일이다. 서화담 선생은 당시의 사회적 몰골을 보다 못해 그 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을 “외화어묘(外化語妙)”라는 말로써 꼬집었다. 외화(外化)라는 것은 겉으로만 번드레하게 꾸민다는 뜻이고, 어묘(語妙)라는 것은 말의 알쑹달쑹함 때문에 갈피 잡기 어렵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경우 갈피잡기 어려울 때는 번드레한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같은 상황에서 여론을 몰고 갈 기회를 만들어간다. 이는 정도(正道)는 아니나 무너진 둑으로 흐르는 물 같아서 잠재적인 위기 요인이 뒤따르기 쉽다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가 이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을 가리켜 유행불식(流行不息)이라 한다. 흐르는 물은 둑으로 막아도 계속 흐른다. 사람을 두지 속에 가두어놔도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갇힌 물은 범람하여 수재(水災)를 불러오기 쉽고, 두지 속에 갇힌 아희는 기형으로 자라기 쉽다. 성장이나 변화는 멈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외화어묘(外化語妙)의 야릇한 수법으로도 넘지 못할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화담 선생은 그런 행태를 가리켜 역학을 모르는 자들의 짓이라 했다. 즉 겉으로 번드레한 말재주 부리는 자(外化語妙)는 변화와 개혁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소행으로서 변역을 모르는 자(非知易者)들의 그늘진 측면임을 귀띔해주고 있다. 정치집단 성원일수록 역(易)과 불역(不易)이 동시에 조화를 이루면서 생성유전(生成流轉)의 바른길(正道)을 열어간다는 것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서화담의 비지역자(非知易者)라는 지적은 모르면서 정치한다고 거들먹거리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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